2008. 4. 우먼라이프
PRESS RELEASE/Magazine 2008/05/06 00:02
 
본성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
女 · 身 · 佛

한성대 이기향 교수의 예술의상 작품전이 지난 3월 7일부터 18일까지 광화문 갤러리에서 열렸다. 불교의 '공(空)'사상을 옷과 바디 페인팅,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는 패션과 불교가 결합되어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 혼자만의 내밀한 고민이라 생각했던 구도의 길이 이기향을 통해 트렌드의 첨병 위에서 펼쳐지는 현장. 이기향의 무빙이미지 展, 나 훔쳐보기!


무 소 의  뿔 처 럼  가 라

3천년 전 발견된 불성은 당시와 같은 방법으로 전파되고 이해될 수 있을까? 전해지는 내용보다 매체 자체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사회학자 맥루한의 말을 따라가 본다면 시공을 초월하는 진리조차 '누가, 어떻게'에 대한 대입을 적용받게 된다. 따라서 이기향이 택한 패션이라는 도구는 상당한 설득력과 가치를 지닌 셈.
  그는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남편을 따라 유학을 갔다. 이미 서양적인 것을 공부했고 드디어 본고장에도 갔으니 이기향의 말처럼 당시는 '건방졌다'. 그러나 그곳에서 지난 시간 그가 추구했던 '서양적인 것'을 서양인들이 이미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만다. 그럼 나는? 이기향은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조각은 덩어리 작업이라 색깔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서 판화 공부를 했는데, 문제는 당시 실크스크린, 에칭 등을 공부하려면 몸에 해로운 산이나 솔벤트 처리가 필요해 방독 마스크를 써야하는 일이었다.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작업도 하고 싶은데, 아이를 오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일까? 회의를 느낀 그는 보스톤의 한 패션학교를 찾았다. 재미있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자체가 거기 들어있고, 인간이 그녀 앞에서 최고의 멋있는 모습으로 연출되는 게 신났다.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느냐를 떠나 그 일이 행복을 위한 것인가가 중요하고,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게 정말 예쁜 일이죠. 저는 당시 제가 가졌던 편견을 깨고 나를 찾아가는 공부를 한 거예요. 좋은 학교보다 좋은 공부, 이것이 바로 제 삶을 바꿔 놓았죠."

  한국에 돌아오니 독실한 불교 신자인 시어머니는 이기향에게 불법을 공부해 보라고 권했다. 법륜 스님의 강의를 듣고 말 그대로 '한 대를 맞았다'. 자식에 대한 배반감으로 힘들어하는 할머니에게 법륜 스님은 '남이라고 생각해라. 그럼 밥 줘서 고마워, 재워줘서 고맙지 않나'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할머니가 혼자서도 행복해지는 길을 보며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 또한 손바닥을 뒤집으면 있는 것 아닌지' 생각했다. 당시 그는 여성으로 살기, 자신의 한계 등에 문제를 안고 삼십대를 보내고 있었다. 불교책을 읽었고 여성에 대한 차별은 대처해가야 하는 하나의 공부임을, 스스로 느끼는 한계는 불성을 찾는 순간 그 어떤 테두리로 되지 못함을 알게 됐다. '나라는 존재는 무소의 뿔처럼 열심히 가면 되겠구나'같은 발견들이었다.


둘 러 싼  모 든  것 은  옷 이 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열렸다. 이전까지 패션이 예술의 장르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패션은 예술이다'라는 철학을 가진 이화여대 배천범 교수의 영향으로 비엔날레에 미술의상전이 열리게 됐다. 배천범 교수는 이기향의 스승이자 서울대 선배. 당시 이기향은 '피안을 향해서'라는 전시회를 열었고 다분히 불교적인 여덟 벌의 작업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계속 불교적 화두를 가지되 예술적 각도에서 좀 더 세련되어지고 대중에게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게 된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불편하지 않게 보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겠죠? 사실 불교라는 이미지는 현대와 거리가 있고 약간 박물관 속 이미지를 주기도 해요. 물론 진리라는 게 현대, 과거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말이죠. 제 작업에서 하나의 축은 철학 즉 불교적 성찰이고 또 하나는 옷이에요. 옷은 인간을 감싸는 것으로 인간의 몸과 뗄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여성이라는 주제도 내가 여성이니만큼 버릴 수 없는 주제이고, 그래서 보면 항상 내가 있고 옷, 여성, 몸이 있어요. 즉 내가 여성이고 옷을 입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철학이 있고, 이것이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행복으로 가는 지혜를 만나 이 지혜를 시대에 맞게 푸는 작업이 제 일이 된 거죠. 누가 제게 예술가라는 호칭을 준다면 그 길은 행복을 나눠주는 미션을 가진 길이라고 생각해요. 제 작업을 보는 이들이 행복하고 밝아지길 바라고 또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불성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라고 할까요?"

  그에게 옷은 인간을 감싸는 모든 것이다. 벗어도 옷이고 그려도 옷이다. 크게 보면 공간도 하나의 옷이고 입어도 옷이고 입지 못해도 옷이다. 옷이라 규정하면 다 옷이 된다. 그는 이 옷을 통해 불교의 공(空)사상을 표현하려 한다. 이기심으로 가득 찬 나를 비우는 것도 空이고 너무 꽉 차서 비어있는 것도 空이다. 변화무쌍해서 어느 하나가 진실하고 영원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전체가 空이다.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는 주제를 어떻게 시각화할 건지 고민에 빠졌죠. 공의 세계는 말할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는데 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보이게 해야 되는지 정말 난감했죠. 내가 패션과 옷으로 진리를 표현한다는 게 수많은 석학들이 웃을 일이 아닌가, 많이 생각했고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용기를 냈어요."


진 리 는  그 대 로 이 다 .  있 는  그 대 로  보 자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영상을 도입했다. 의상을 아주 가까이서 찍으면 옷의 씨실, 날실만 보이는데, 이 때 '이것은 아무개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거 아무개 맞아?'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후 좀더 뒤로 뒤로 카메라가 물러나면서 전체 형태가 또렷해지면 '이것도 아무개다'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 이기향 교수는 '당신이 봐서 적합한 것만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되묻는 것. 한편 대낮에 빙글빙글 춤을 추는 사람을 1000분의 1 셔터 속도로 찍으면 사람이 또렷하게 보이지만 해가 저물 무렵 똑같은 모습을 15초 속도로 찍으면 사람은 연기처럼 보인다 .똑같은 물체에 시간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어떤 것이 진실인지 생각해보고 싶어요. 우린 상당히 관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여자는 예뻐야하고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등의 관념들 말이에요. 예로 그윽한 향의 커피를 마시면서 그 자체로 행복하면 되는데, 훗날  같은 향의 커피를 마시던 남자가 나를 떠나며 비수를 꽂았던 일을 떠올리죠. 그리고는 다시 마음에 분노를 일어나게 해요.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을 덧붙여서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을 일어난 것처럼 우리가 착각하며 고통스럽게 사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죠."

  이 외에도 이기향 교수는 보살과 아귀가 그려진 천에 구멍을 내고 여기에 몸을 끼워보며 때론 보살이 되고 때론 아귀가 되는 한 몸에 대해서도 애기하고 있다. 나에게 탐, 진, 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살도 있으므로 긍정의 세계로 가자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이렇게 내 안의 불성을 찾는 방법에 대해 이기향 교수는 '일단은 훔쳐보라'고 제시한다. 질투와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보는 일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므로 처음엔 훔쳐보는 방법도 괜찮다는 것. 불경에 있는 말씀이 꽤나 어렵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에 영상이라는 매체를 택한 것처럼 자성의 길 또한 어렵다면 좀 더 대중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세상이 빨리 변하므로 소통이 용이한 도구를 찾는 일은 예술가들의 몫.

  "제가 요 정도밖에는 안되지만 이렇게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으로 이번 작업을 준비했다면 납득이 되시겠어요? 제 작업을 보는 이들이 참여하고 움직여주고 촉촉한 감동을 받아서 행복을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기향 교수는 그간 무대미술과 쇼 형식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고, 이번에는 영상을 빌어 공 사상과 패션을 얘기했다. 다음 작업으로 동성애자를 테마로 삼을 생각. 외국 생활에서 겪은 마이너리티에 대한 감성과 고찰을 풀어볼 계획이다. 혹자가 '그간 선택했던 표현 매체가 많아 산만한 감이 있다'는 평을 한다면 그는 "행복을 전달하기 위해 모든 매체를 동원할 뿐"이라고 답할 것이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 너무도 어렵게 이뤄지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고, 너무도 쉽게 한순간에 되는 것이 행복일 수 있다.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글_서상희 기자 / 사진_이효준 포토그래퍼 / 사진제공_LOTUS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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