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여행기 (2001.7.26-2001.8.6) -참여불교-
DIALOGUE/My Life, My Works 2007/01/26 16:14
 
나는 교수 불자 연합회 국제부의 소임을 맡고 있기도 하거니와 수년 전부터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동료가 작품의 영감을 위한 불교 테마 여행의 동참을 종용하였던지라 오랜만에 뜻깊은 순례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간 교수 불자 연합회 국제부에서는 90년도 인도의 四대 성지를 시작으로 타일랜드, 중국, 미얀마 등의 성지 순례를 수행하고 개인적으로는 스리랑카,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도르등의 성지를 다녀왔다.
이삼년 전부터는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서양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나라 티베트와 그 불교 문화에 깊은 관심이 끌리게 되고 티베트 불교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현재 구상하고 있는 작품을 위해 자료 수집을 해오고 있다. 불교 조형 미술을 작품 연구에 중요한 모티브로 하고 있는 나에게 ‘탱화를 조성하는 전통을 지켜 내려오는 지구상의 오직 두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는 티베트는 한없는 매력을 지닌 곳이기도 했고 이번 순례를 통하여 티베트가 지닌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종교적 특성으로 비쳐지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어보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세계인의 관심 속에 영향력을 미치는 마음좋은 아저씨같이 보이는  달라이 라마는 과연 관음보살의 화신인가?

활불이 계신 불국토가  중국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벽에 부딪힌 서양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시원스럽게 제시하고 물질 문명을 神처럼 떠받들던 그들을 매료시킨 티베트 불교는 도대체 우리의 불교와 무엇이 다른가?

세계적 거장이라 칭하는 대 감독들이 신비로움과 순수함을 가지고 접근했던 영화들, ‘리틀 붓다’, ‘티벳에서의 7년’,  ‘쿤둔’ 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영화들에서  왜 티벳 불교를 이야기하는가?

티베트 불교가 샤먼적인 요소를 갖고 있음이 두드러지게 보이지만 유독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상의 것들이  직접 체험해 보고 알고 싶은 것들이었다.

나는 연구의 테마를 불교적인 데에 두고 있으면서도 근기가 변변치 못하고 수행이 미치지 못하여 늘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그 분의 맑은 향내에 젖어보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램이다.
그러나 고산병의 어려움을 접하게 되었고 함께 여행할 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티베트를 중심으로 성지 순례하려던 일차의 계획을 접고 그와 유사한 문화와 자연 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북인도 쪽으로 우회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티베트 불교 문화의 체험뿐만 아니라 작품 촬영의 좋은 배경이 될만한 아름다운 자연환경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여행의 코스는 인도 지역의 베테랑인 이 상만 사장의 오랜 경험에 의하여 택해지고 작품의 시놉시스는 미리 인도로 보내졌다. 녹녹치 않은 여정이었지만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섞여 이루어진 훌륭한 순례가 될 수 있었음에 이 자리를 빌어 그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그는 매우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열흘 이상을 동행하며 우리 일행을  보필해 주었다.

우리의 순례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서울을 출발하여 델리->  찬디가르-> 다람살라 (2박) -> 잠무 -> 스리나가르 (2박) ->  카르길 -> 레 (2박) -> 델리 -> 서울에 이르는 11박 12일의 여정이었다.
우리의 여정은 인도 최북단에 위치하는 3개의 주를 거치며 이루어졌는데 인도의 수도 델리가 있는 하르야나주에서 출발하여 펀잡주의 찬디가르와 다람살라를 거쳐 잠무카시미르주의 잠무, 스리나가르, 카르길을 경유하여 이번 여행의 클라이막스가 될 라다크 제일의 도시 레로 들어가는 순례길이다.  

여행 이틀째는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뷰지에가 설계했다는 미래 도시 찬디가르를 떠나며 상념에도 젖어 보았다.
유럽인인 그는 누구의 미래를 위해서 이 도시를 디자인하였을까? 예술가에게 예술성과 도덕성은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공존해야 하는 것일까? ..... 인도의 풍토를 한껏 살렸다는 아름다운 도시를 음미하며 걸어보고도 싶었지만 다람살라까지 갈 길이 멀다하니 마음을 접는  수밖에....
우리 일행은 아침 식사 후 아름다운 도시 찬디가르를 떠나 촉촉히 내리는 빗속을 한참이나 달려올라 오후 서너 시경 멋진 안개가 걸린 다람살라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서부터도 차 두 대가 어렵게 스쳐 지날만한 꽤나 가파른 언덕을  몇 번이나 더 돌아 도착한 메끌레오간지가 우리가 다람살라로 알고 있는 곳이다.
이틀을 머물렀기 때문에 남걀 사원, 임시정부와 내충 신탁 사원이 있는 지역, 티벳 어린이 마을 등을 방문하면서 찬찬히 살펴볼 여유를 가졌는데 어려운 살림의 망명 정부가 들어선 곳이라 그런지 건물과 도로 시설들이 무계획적으로 자리하고 있어 참으로 남루한 인상을 받았다. 이곳은 달라이 라마께서 계신 성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 서글픈 생각이 번져감을 어찌할 수 없다. 그들의 나라 잃은 슬픔이 자꾸만 내 가슴에 여울진다. 이 가여운 백성들을 거느린 달라이 라마 당신의 연민은 어떠하실까?  자비로운 어머님이신 관음의 화현은 당신 어깨에 지고 있는 티베트 백성의 고통에 소리 없이 눈물짓지는 않으실까?
계속 내리는 비가 마치 그의 눈물 같이 느껴졌다.
성지에 머무는 동안 내내 애잔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셋째날 아침 호텔서 20여분 걸어서 방문한 남걀 사원, 그 큰 법당에 들어섰다. 사진 속의 미소짓는 달라이 라마는 법당의 분홍빛 오묘한 구성의 탱화를 배경으로 그대로 하나로 녹아든다. 어설픈 오체투지를 드리는 내가 선 구석자리에서도 나는 그가 전하는 자애로운 메시지를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달라이라마는 사랑과 자비로 백성을 품어주며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경배드리고 있었다. 그와 티베트 민족 사이에 단단히 매어진 신뢰와 사랑 그리고 존경의 끈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는 과연 자비의 화신이며 백성의 부모였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지식들이 가슴에 울려왔다.
그들은 나라 잃은 슬픔에 주저앉지 않고 인과법칙의 슬기로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법 속의 저들의 모습이 진실로 아름다웠다.

남걀사원 법당 앞에서 하염없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할머니 옆에서 나도 어설픈 오체투지를 흉내낸다. 그녀는 나에게 다 해져 가장자리만 남은 손걸레를 밀어준다. 이곳에 와서 직접 예배할 수 있음에 눈물이  날 것 같다.(사진 1)

망명 정부를 방문한 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달라이 라마가 이곳으로망명할 때 함께 가지고 온 중요한 경전과  탱화 등을 보관한 도서관은 관람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부근에 위치한 내충사원(Nechung Monastry)은 참으로 흥미로운 곳이었다. 내충사원에는 ‘쿠텐’이라고 부르는 신탁 승려가 있는데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에 자신이 영매(미디움)가 되어 티베트 수호의 神 내충의 지혜를 전해주는 승려이다. 그는 사사로운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국가가 지정한 State Oracle이다. ‘쿤둔’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할 때 신탁에 든 쿠텐이 그려주는 지도에 의거하여 길을 따랐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1950년대에 세워진 다람살라의 내충 사원은 물론 티베트의 내충 사원을 본 따서 만든 것이며 이곳에는 쿠텐 승려의 가르침 아래 70명의 승려가  불교 철학, 심리학, 대 소승 경전, 탄트라 경전, 불교 의식 무용, 불교 음악 등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내충 쿠텐이 영매로서 신탁을 하는 전통은 티베트 민속 종교인 ‘뵌포’교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더욱 재미난 것은 뵌포교의 사제가 降神상태에서 헛소리를 하는 것, 무악, 제물, 의식을 집전할 때 입는 무복은 우리나라의 무당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과 흡사하다고 한다. 티베트 문화, 특히 민속을 보면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군 신화의 고향인 신산과 불교, 힌두교, 뵌포교의 神山이 모두 수미산이기 때문이다. 이는  원시 샤머니즘이 중앙 아시아  알타이 문화전반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고 우리 민족과 티베트 민족과 사이에 관련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한다.

여행 4째날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을 울린 방문은 Tibetan Children's Village를 방문한 일이다.(사진 2)
부모와 헤어져 이곳에서 생활하는 네 다섯 살 어린 꼬마로부터 중학교 연령 대의 소년, 소녀들은 모두 푸른 교복에 회색 빛 조끼를 입고 있었다. 나는 조금은 수줍은 듯 우리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갸냘픈 몸매로 꼬옥 안기는 아이들이 참으로 안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티베트 민족의 건강한 미래를 보았으며 티베트의 현실을 세계에 알릴 힘찬 동량을 보았다. 달라이 라마의 여동생이 교장으로 있는 TCV는 비교적 정갈하고 견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내 귀에는 나즈막하지만 힘있는 디렉터의 말소리가 가슴에 울린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중국을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도록 가르칩니다. 미움은 또 다른 고통을 낳기 때문이죠.......“

여행 6일, 7일째 누렸던 야생의 연꽃이 제멋대로 흐드러져 피어 있던휴양도시 스리나가르의 달 호수!
그 아름다움은 여행의 백미로 기억된다. 나는 호수에 비치는 달과 나를 내려다보는 이지적인 만월과 온통 하나되어 적막한 호수에 배 띄워 두둥실 노 저었다. 배에서 바라보는 선상 호텔은 꿈 속에 보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나른한 휴식으로 이틀을 만끽한 우리는 이제 여행 8일, 9일째, 라다크 지방으로 가기 위해 장장 이틀을 달려가야 한단다.  누구에게나 가장 힘들었지만 그런만큼 기억에 남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누우런 황토 빛깔의 히말라야 산 구비 구비 420여 킬로미터를 입술이 타는 것 같은 두려움으로 먼지와 싸우며 달려 대면 긴장이 고조되어 잠도 오지 않는데 고산증 증세로 일회용 산소를 3통째 마시고 있는 15살 짜리 조카는 아예 운전석 뒤에 일자로 누워버렸다. 자라는 아이들은 어른 보다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데..... 조카는 열이 올라  입술이 바짝 마르고 몸이 뜨겁다. 어린 나이에 좋은 체험이 될거라 여기며 동갑나기 딸도 함께 데려왔는데  딸은 아직 괜찮다. 험한 곳을 당신 손주를 다 데려간다고 걱정하시던 시아버님의 말씀이 맘에 걸린다. 모두들 지치고 조카 걱정으로 마음들이 편치 않을텐데....에구, 알고서 이 고생을 또 하러 올까하는 생각이 절로 고개를 든다. 다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무사해야 할텐데.....슬며시 염려가 된다. 바로 그 때  혜초 스님께서도 불법을 구하러 이 길을 지나가셨을테지.....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부끄러움에 혼자 얼굴이 벌개졌는데......  “나라유르 곰파를 참배하십니다. 내리십시오”하는 소리 ......(사진4)
아찔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또 치솟은 산을 향해 꼬박 이틀째 달려 오르고 내리길 서너번 ..... ‘나라유르 곰파’ 라니! 도대체 이런 곳에 뭐가 있단 말인가.  아휴~ 저어기 절까지 이 땡볕에 어떻게 걸어갈꼬? 칭얼대는 딸을 부축한다. 나도 그런데 너는 오죽하겠니......
그런데.....
그곳은 내가 만난 황량한 산 속의 오아시스였다. 최소한 나는 하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신선한 감동을 지금 또 떠올린다. 나라유르라는 이름은 그 황량한 산 속에 무엇이 있을거냐고 얕잡아 본 나의 안이한 생각을 강타했다. 작지만 지금도 불사를 하고 있는 1000년 역사의 현장,  이 유서 깊은 고찰......  곰파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이 간 나는 계속 어리둥절하였다.  카규파의 법맥의 발상인  마루빠가 수행하던 동굴이 법당 옆에 어둠으로 통해 있었고 틸로빠, 나로빠, 밀라레파의 불상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었다. 20년전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읽고 그 감동을 아직도 가슴에 묻고 계신 김동민 교수님의 감회어린 표정이 퍽 인상적이었다. 선생님 덕분에 요즘 나는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읽고 있다. 야외 도량엔 찬란한 붉은빛 단청 건물이 오히려 무채색 자연을 배경삼아 더 더욱 찬란하다.  푸른 대자연 속의 우리네 단청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아하! 그래서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또 다시 아름다운 단청으로 채색되어  있고 신심이 절로 나는데.......따라보살과 여러 고승의 사진 그리고 티베트 경전들이 벽쪽에 놓여져 있고 의식용 법구가 한쪽에 놓여있다. 야외 법회에 쓴다는 탕카가 회랑 천장에 매달려 있는 표정도 이채롭다....... 뒤쪽의 법당엔 석가모니 부처가 계시고 동승이 앉아서 경전을 읽고 있다......... 정말 환희롭다. 감사한 마음이 솓구쳐 삼배 올린다. 잠시 앉아서 입정에 들었다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밖으로 나왔다. 아! 도량 밖으로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경치가 예사롭지 않은데..... 그래서 마로빠 스님이 이곳에 토굴을 지으셨나 보다...... 토굴에서 혜안으로 바라보고 달의 표면처럼 보이는 저곳을  ‘달’이라 이름 붙이셨을까?  혼자 상상의 날개도 펴본다.
이틀 내내 산 속을 달리느라 어지간히 지쳤던 우리는 그곳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청량감을 느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잡은 우리의 사찰만 생각하다가 생각의 틀이 한껏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황량하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일구고 닦아왔을 것이라 추측해 보았다. 나 같은 근기로 이런 척박한 땅에서 수행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드니 어깨가 슬며시 움추러든다.

나라유르를 떠나 또다시  풀 한 포기 보기 힘든 히말라야 계곡을 다시 덜컹거리는 버스에 싣고 또다시 이력이 날 만큼 버스는 달린다 우리의 마지막 방문지가 될 라다크 지방의 레를 향하여.

여행 9일째,  밤에 찾아들은 레의 호텔 식당에서 식욕이 없다는 아이를 달래어 스프와 흰죽을 먹였더니 밤새 토했단다. 조카가 걱정이 되어서 아침 일찍 의사의 왕진을 청했다. 오전엔 동서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함께 있다가 아이는 하루 종일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대로 오후에 우리만 틱세 곰파에 있는 일행과 합류했다. 틱세 곰파는 먼 밖에서 보기엔 황량했지만 쏭카파의 예언대로 15세기에 창건된 경관이 빼어난 절이었다. 법당에 모셔진 미륵불은 정말 아름답고 화려했다.(사진 5) 특히 눈매의 선과 입술의 윤곽선이 조형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처리되어 빼어난 완성미를 갖추고 있는데, 입체로 조성된 채색 부처가 전무한 우리의 눈에 새로운 불교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섬세하고 화려한 가운데서도 기품이 배어난다.......

오늘은 보름 - 티베트 사찰에 뿌자(법회)가 있는 날
도량의 한 켠에는 머리를 길게 따고 검정색 민속의상을 입은 열댓 명의 할머니들이 뿌자를 끝내고 나와 보자기를 펴놓고 공양을 들고 있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주름으로 깊게 패었지만 어느 누구하나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저 곱고 자비로운 미소는 어디서 올까?

‘당신은 친절한 마음과 함께 합니까? 라는 티베트 인사말이 있다. 그들은 평생 남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며 남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불교는 복을 비는 수단이 아니며 나보다 남을 위하는 利他의 생활이 삶 속에 깊숙이 배어있다.
그 많은 림포체들도 또 달라이 라마도 다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성불을 미루고 다시 오시는 관세음보살이라 하지 않던가?
티베트 사람의 종교 생활은 ‘사람들에게 친절함’에 다름이 아닌 듯 싶었다. 이런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꽃보다 아름다운 인간의 마음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으리라......서양인들에게 죽음이란 입에 올려 이야기하기에도 끔찍한 주제인데 이런 그들에게 생을 마친 수행자가 옷을 갈아입듯이 죽음을 맞이하고 또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환생한다는 불교적 컨셒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겠는가? 기라성같은 감독들이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려고 온 정성을 쏟아 부었음이 이해가 갈 것이다.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호지 여사는 티베트 인들의 삶의 방식에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미래가 있다하지 않았던가?
티베트에서 재산은 자식에게 상속하지 않고 절에다 희사하기 때문에 재산을 악착같이 모으지 않는다고 한다. 또 그들은 생활 문제로 근심  하지 않는다. 마음에 갈등이 생기거나 집안에 다툼이 생기면 곧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실천한다. 덕분에 그들에게 우울증 환자나 치매같은 정신 질환이 없을 뿐 아니라 집안 문제, 사회 범죄가 없다.
그러니 자본주의 체제로 빚어진 갖가지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패러다임으로서 그들의 불교적 삶이 서양인들에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갔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활불이 계신 불국토가 침략의 마수 아래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질문이야말로 불자 모두에게는 큰 화두일 것이다. 그러나 대원사 현장스님의 명쾌한 한 말씀은 내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무지개로 마음을  밝혀  준다.
“.......로마의 박해는 기독교가 세계화하는 초석이 되었듯이 중공의 티베트 침략은 티베트 불교의 세계화를 가져 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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