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는 지금 정진하라. -교수불자회보-
DIALOGUE/My Life, My Works 2007/01/26 16:17
 

교수불자연합회 국제부에서는 2002년 2월 13일부터 5박6일의 일정으로 일본 사찰 순례를 다녀왔다.
지난해 여름 거칠고 척박한 땅 히말라야 산자락을 다녀왔기에 또 다른 느낌의 순례여행을 꿈꾸며 잘 정돈된 나라, 일본을 성지로 택하였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낯선 시코쿠(四國)의 대표 사찰을 순례키로 한 데는 교불련의 과거사와 관련된 일화가 담겨있다.

유종민 교수께서 회장으로 계시된 즈음인 1997년이었다.
독일의 함브르크 주 정부에서 ‘97 KOREA TAGE' 가을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회장단에서는 행사의 내용에 불교문화가 소홀히 다루어져 있음을 개탄하고 당시 해인사에 주석하시던 혜암 큰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문화 순례단을 결성, 세미나 및 문화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국제부장이었던 나는 사무총장과 함께 독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자리한 일본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일본에 불교를 전한 空海 스님의 발자취가 남겨진 88개의 절 순례가 시코쿠의 큰 자랑거리라는 것이었다. 그 분은 친절하게도 후에 순례자를 위한 상세한 안내 책자와 사누끼 지방의 우동 국수도 보내주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 97년 당시 무심코 들었던 말이 인연이 되어 2002년 겨울 성지 순례의 목적지가 된 셈이다.

774년 시코쿠의  善通寺에서 태어난 공해 스님은 일본 眞言密敎의 창시자로 평생동안 수행에 전념한 고행승이며 진언종에서는 南無 遍照 金剛이라 하여 예경하고 있는 분이다.
시코쿠에서는 공해 스님의 발자취가 남겨진 88개의 지역 사찰을 크게 넷으로 나눠 발심의 도량, 수행의 도량, 보리의 도량, 열반의 도량으로 각각 이름지어 순례객이 더욱 불심을 공고히 다지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되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스님이 태어난 곳인 선통사, 그리고 안락사, 대일사 등을 비롯하여 손수 건립하였다는 도량들, 영산사나 법륜사처럼 본존불을 손수 조성해서 모신 도량,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오곡을 심었다는 종간사 등 절마다 재미나고 유익한 이야기가 담겨져 순례의 의미를 더해주었다.  스님의 발자취가 담긴 여든 여덟 개의 절은 일본 전역에서 순례자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시주도 많고 아주 윤택하다는 것이 안내자의 말이다.

이 모든 코스를 걸어서 순례하면 오륙십일이 걸리며 차로 순례하면 보름 정도 걸린다 한다.
우리의 성지 순례 여정은 88개 중 17군데의 대표사찰과 그 지역의 역사가 담긴 문화재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 등을 산책하는 것으로 짜여졌다.

우리와 스쳐지나는 일본 사람들은 걸어서 참배하는 듯한 초로의 부부들도 있었지만, 시끌벅적 이삼십명이 함께 모여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는데, 즐겁고 활기차 보였다.  그들은 방울소리가 나는 금강장 지팡이와 시오가사(흰색의 법복)를 입고 순례길에 오르는데 88번째 중 가장 마지막인 대구사에 다다라서는 結願의 의미로 삿갓과 금강장 모두를 봉납하고 돌아간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奉納經帳이라고 표지에 쓴 백지로 묶은 공책을 가지고 다니며 참배한 절마다 朱印을 받는데, 절의 경내 한편에 納經所를 마련해놓고 스님 혹은 식구들이 朱印위에 본존불과 사찰 이름을 정성껏 써주고 300엔을 받는 것이 아예 관례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멀리 한국에서 건너간 우리 일행에게 가장 아쉬웠던 점은 두 서너 곳의 절을 빼고는 아예 법당에 들어가 볼 수조차 없을뿐더러 그나마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주존불이 함 안에 모셔져 있어 친견할 수 없었던 점이다.  어떤 경우엔 33년 만에 한 번 열린다니... 소중한 부처님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인가....  불교 문화재의 도난과 훼불이 많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참고할 시스템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닫혀진 본당 앞에서지만 방문한 열일곱 군데의 사찰에서 모두 조홍식 교수님의 낭랑한 음성을 선두로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본당에 모셔진 주불이 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아미타불, 대일여래, 천수천안 관음, 십일면 관음, 부동명왕 등 사찰마다 다른 의미와 유래를 지니고 있음을 본당 전각의 현판에 의해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 이틀째, 일본 불교를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이해하기 위하여 찾아든 순례 18번째 도량인 대일사 宿房에서 우리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방을 배정받은 일행이 한가로이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살며시 방문이 열리며 자태가 고운 한국 여인이 조용히 들어와 앉는 것이었다.  일본 사찰에서 한국여인을 만난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그녀의 입에서는 더더욱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자신은 대일사의 안주인 김묘선이며 大栗 弘榮 住持 스님의 아내라 했다.
오오쿠리스님은 해외 문화 교류에 관심을 갖고 사찰이 문화교류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이 방면으로 노력하고 계셨는데 6년 전 이 지역에 무용단을 이끌고 공연하러 온 김 단장 일행은 마침 주지 스님의 호의로 대일사 숙방에 머물게 되었다 한다. 전생의 인연인지 자신의 살풀이 춤에 크게 감동을 받은 주지스님과 연을 맺게 되어 지금은 안주인의 자리에 있다는 실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김씨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인 이매방 선생이 가장 아끼는 제자이다.
일찍 혼자되신 아버지와 아래 네 명의 동생을 모두 수발하고 혼인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일본에 와서 배필을 만난 것이었다.  처음엔 자신의 예술 세계 때문에 결혼을 망설였지만, 스님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이고 고국을 떠나더라도 반드시 한국 춤을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큰  뜻을 세우고 일본에 건너왔다 한다.

일본에서 절의 안살림은 보통 승려의 여식이 출가하여 관리하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결코 쉽지만은 않은 스님의 아내 역할과 훌륭한 예술가의 역할에 한치의 소홀함도 없어 보이는 그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두 번의 아기 유산, 절 식구들의 냉대, 언어의 극복, 이른 새벽마다 꾸준히 이어가는 춤사위 연습, 일년이면 7,000명이 다녀간다는 숙방의 손님맞이.. 이 많은 일의 어느 하나 소홀치 않게 해내어 지금은 일본인들의 칭송을 받기까지.. 한국 여인의 저력을 본 듯해서 정말 흐뭇했다.  게다가 유난히 자손이 귀한 집안의 대를 이어 주지 스님을 비롯한 집안의 기쁨이 이만 저만이 아니란다.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버림으로써 지금은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지만 끝없이 정진해 나아가는 김씨의 삶은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저녁 내가 느낀 환희심은 나 자신이 佛緣에 닿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기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다음 날 예정된 새벽예불 참석을 위해 모두는 끝없는 이야기꽃을 접고 스님 처소를 물러 나왔다. 이번 순례 중 유일하게 본당에서 예불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심에 감사했고 특히 교수불자연합회를 위해 법석을 펴주신 오오쿠리 스님께 감사의 합장을 올린다.

나지막하지만 힘있는 스님의 법문이 지금도 가슴에 울린다.
“죽어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생명이 붙어 있는 지금 성불할 수 있도록 정진하라...”

노교수님들께서 수행의 삶으로 자신을 지켜가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심에  이를 귀감으로 더욱  의미있는 순례가 될 수  있었음에 감사의 합장을 올립니다.


2002년 2월
국제부장 이기향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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