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전시 초청 강연, ‘마음으로 입는 옷’
DIALOGUE/My Life, My Works 2007/01/26 17:35
 
느림의 미학 전시 초청 강연, '마음으로 입는 옷'

김해자 선생님의 “느림의 미학”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시대 사람들이 철없이 저버린 소중한 가치를 꼭 붙잡아 올곧은 모습으로 몸소 실천하시는 수행자이십니다.  정성의 철학이 담긴 누비옷으로 찬란한 한국 규방 문화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리고 계시지요.  저도  정진하는 마음으로 작업하려는 사람이기에 선생님을 뵈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런 훌륭한 자리에 많이 부족한 제가 외람되이 섰습니다.  선생님의 빛나는 전시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하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제는 <마음으로 입는 옷>입니다.  누비에 담긴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옷을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정성껏 디자인하여 많은 분들이 떠올리는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옷이  ‘마음으로 입는 옷’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으로 입는 옷’이란 무엇일까요?  입는 이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축원하는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해 지은 옷을 말합니다.   한 땀 한 땀  정성껏 누벼 지은이의 마음을 입히는 것입니다.  누비를 입으면 몸이 포근해지고 마음까지 순화되어 행동을 가려하게 됩니다.  혹시 뭐라도 묻으면 어머니 얼굴을 어떻게 뵙나?.......다투기라도 하면 어머님이 얼마나 실망하실까?......하고 말이죠.  옷을 입는다기보다는 지어주신 어머님의 정성을 입어 행동을 가려 하게 되는 옷,  오래 입어 다 해져도 선뜻 버릴 수 없는 그런 옷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입는 옷’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물건의 소중함을 깨우쳐 줍니다.  저도 출가할 때 어머님께서 손수 지어주신, 지금은 끝동이 다 해진 옷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꼭 돌아가신 어머님을 뵙는 것 같아서 애틋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여러분의 장롱 한 켠에도 그런 추억이 여울져 있으실테지요?
오늘 이기향이 보여드릴 ‘마음으로 입는 옷’은 행복을 염원하는 심오한 상징과 의미를 한껏 담아 디자인한 옷들입니다.  그래서 입는 분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정성을 다해 입을 수 있는, 영혼을 담아 지은 옷들 이지요.

제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조금 남다른 생각을 갖게 된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오늘에 있기까지 나의 삶은 수많은 인연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인연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제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는 강한 에너지가 되어 샘솟습니다.  그 인연은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으로부터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저와 인연을 맺는 사람들이 제가 정성을 담아 만든 옷들을 감상하고, 혹은 입고 행복을 느끼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제가 그간의 살아온 길을 간략히 말씀드릴게요.  대학을 마친 해에 결혼한 저는 지아비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자신감이 넘쳐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자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콧대가 높은 사람들이니 아무도 한국을 알아주지 않는 겁니다. 지구 반대편 동양에, 어디 붙어있는지도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나라, 6 25 동란이 끝난 지 당시 30년도 더 지났건만 한국 전쟁 덕에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나라,  군사독재정권 아래 억눌려서 살 곳이 못되는 나라.....뭐 이런 수준입니다.  또 일찍부터 서양 미술을 배웠다고 자신했던 저였지만 그들의 눈으로 보면 서양 미술을 전공한 코리언이 뭐 그리 대단해 보였겠습니까? 1980년 당시에 뉴욕 대학서 유학하던 무용가 김매자 선생의 이야기를 빌자면 ‘일본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니면 한국인은 사람도 아니었다’는 말씀은  저와 꼭 같았던 처지를 잘 반영해 주는 말씀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스물 네 살이 될 때까지 제가 자존심을 걸었던 모든 자랑스런 인연들, 심지어는 나의 조국까지도 오히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제 자신을 깨우쳐 주는 뼈아픈 존재들로 둔갑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뒤죽박죽 혼란 속에 자신감을 잃고 돌아오게 된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시어머님께서 저를 구제해 주셨습니다.  고국에 돌아와 모시고 살게 되었는데 불교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어르신 말씀이라 감히 거절도 못하고 엉거주춤 기초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저를 괴롭히던 혼란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단박에 알 것 같았어요.  혼란이 걷히고 선명해지는 느낌이었죠.  가르침대로 하다면 어려울 것 같지 않았어요.  제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졸지 않고 들어본 강의는 처음이었어요.  시종 고개를 끄덕이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었어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더군요.
‘ 어쩜 이 좋은 것을 여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참으로 분하고 속상한 마음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허황된 생각으로 7년 반을  객지에 살다가 제 나라에 돌아와 비로소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고 귀의처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그 후로 수년 동안 제가 단단히 붙잡았던  편견들을 깨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스스로 모든 것이 가닥이 잡히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선명한 깨우침을 옷을 짓는 작업과 어떻게 접목 시켜야 하는지.....그러다보니 제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제가 해야 할 일이 자연스럽게 일치되어 ‘행복’이란 단어가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겁니다.

이 얼마나 무한한 감사와 축복입니까?  내 주변의 사람들, 위로는 조상님에 대한 고마움이, 아래로는 아이들을 향한 자비심이 샘솟습니다.  이러할진대, 어찌 제가 가진 작은 것이나마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나누는데 인색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회향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가치관이 뒤바뀌어버린 탁한 세상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두운 곳에 조금이라도 빛이 되라는 法名, 智光月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되는데.....늘 떠나지 않는 화두입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정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제 願은 우리 불교문화를 이 시대 사람들과 나누는 일입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 마음으로 입는 옷’을 지어내  미소 짓는 그들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지구 구석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 배우고 마음의 눈으로 창조하여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내년엔 제가 연구년을 맞이합니다.  지구촌을 다니며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내고 궁리하여 마음으로 입는 옷을 만들겁니다.

인간은 마음의 주인이 되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만났음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큰마음을 담아 작업하면 곧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며 4-5년 간격으로 전시회를 열어 소통의 장을 마련합니다.  느림의 미학으로 정성을 다 하다보면 옷 한 벌 만드는데 한 달도 걸리고 때로는 6개월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옷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업하는 과정에 쏟아 붓는 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서두름이 결코 능사가 아님을 잘 압니다.   느림의 미학으로 정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며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옷을 지어 인류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2004년 7월, 문화재 전수회관
 
Trackback Address :: http://www.art-to-wear.pe.kr/blog/trackback/35

Name
Password
address
  Secret
 
 
 
Copyrightⓒ 2007 Art to Wear- Lee, Kihya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