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9,10월호 Engaged Buddhism 참여불교
PRESS RELEASE/Magazine 2007/03/11 13:08
 
특집Ⅰ- 티베트 불교 그 현장을 가다


인과 믿으며 미래 기다린다

이기향 (한성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무한한 매력을 지닌 티베트

  나는 교수불자연합회 국제부의 소임을 맡고 있기도 하거니와 수년 전부터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동료가 작품의 영감을 위한 불교 테마 여행의 동참을 종용하였던지라 7월 26일부터 8월 6일까지 뜻깊은 순례 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간 교수불자 합회 국제부에서는 90년도 인도의 4대 성지를 시작으로 타일랜드, 중국, 미얀마 등의 성지순례를 수행하고 개인적으로는 스리랑카,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도르 등의 성지를 다녀왔다.

  이삼년 전부터는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서양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나라 티베트 문화에 이끌리고 독특한 불교 문화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자료 수집을 해오고 있다. 불교 조형 미술을 작품 연구에 중요한 모티브로 하고 있는 나에게 ‘탱화를 조성하는 전통을 지켜 내려오는 지구상의 오직 두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는 티베트는 한없는 매력을 지닌 곳이다.   이번 순례를 통하여 그들이 처한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종교적 특성으로 비쳐지는 모습이 주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궁금증도 풀어보는 기회를 가지려 한다.

  첫째,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면서 마음좋은 아저씨같이 보이는 달라이 라마는 과연 관음보살의 화신인가?

  둘째, 사고의 벽에 부딪힌 서양인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물질 문명을 신(神)처럼 떠받들던 그들을 매료 시킨 티베트 불교는 도대체 한국 불교와 무엇이 다른가?

  세째, 세계적 거장이라 칭하는 대 감독들이 신비롭게 접근했던 영화들, ‘리틀 붓다’, ‘티벳에서의 7년’, ‘쿤둔’은 왜 티베트 불교를 이야기 하는가?

  네째, 샤먼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티베트 불교가 유독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다섯째, 화신불이 계신 불국토가 중국의 지배 아래 신음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상의 것들이 직접 현장에서 느끼고 체험해 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나는 연구의 테마를 불교적인 데에 두고 있으면서도 근기(根機)가 변변치 못하고 수행이 미치지 못하여 늘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그 분의 맑은 향내에 젖어보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나 티베트 여행을 다녀온 이들을 통하여 고산병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함께 여행할 노교수님들의 건강과 안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티베트를 중심으로 성지 순례하려던 일차의 계획을 접고 그와 유사한 문화와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북인도 쪽으로 우회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티베트 불교문화의 체험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작품 촬영을 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여행의 코스는 인도 지역의 베테랑인 이 상만 사장께 의뢰하고 작품의 시놉시스는 미리 인도로 보내졌다. 녹녹치 않은 여정이었지만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섞여 이루어낸 훌륭한 순례가 될 수 있었음에 이 자리를 빌어 그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그는 개인적으로 매우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열흘 이상을 동행하며 우리 일행을 보필해 주었다.

  우리의 순례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서울을 출발하여 델리 -> 찬디가르-> 다람살라(2박) -> 잠무-> 스리나가르(2박) -> 카르길 -> 레(2박) -> 델리 -> 서울에 이르는 11박 12일의 여정이었다. 인도 최북단에 위치하는 3개의 주를 거치는  여정이었는데 수도 델리가 있는 하르야나주에서 출발하여 펀잡주의 찬디가르와 다람살라를 거쳐 카시미르주의 잠무, 스리나가르, 카르길을 경유하여  라다크 제일의 도시 레로 들어가는 순례길이다.

 


내리는 비는 티베트인의 눈물인가


여행 이틀째는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뷰지에가 설계했다는 미래 도시 찬디가르를 떠나며 상념에도 젖어 보았다. 유럽인인 그는 누구의 미래를 위해서 이 도시를 디자인하였을까? 예술가에게 예술성과 도덕성은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공존해야 하는 것일까... 인도의 풍토를 한껏 살렸다는 아름다운 도시를 음미하며 걸어보고도 싶었지만 다람살라까지 갈 길이 멀다하니 마음을 접는 수밖에...

우리 일행은 아침 식사 후 아름다운 도시 찬디가르를 떠나 촉촉이 내리는 빗속을 한참이나 달려올라 오후 서너 시경 멋진 안개가 걸린 다람살라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서부터도 차 두 대가 어렵게 스쳐 지날만한 가파른 언덕을 몇 번이나 더 돌아 도착한 메끌레오간지가 다람살라로 알려진 곳이었다.

메끌레오간지에서는 이틀의 여정이 싸여져 있었기 때문에 남걀 사원, 임시정부와 내층 신탁 사원이 있는 지역, 티베트 어린이 마을 등을 방문하면서 찬찬히 살펴볼 여유를 가졌는데 어려운 살림의 망명 정부가 들어선 곳이라 그런지 건물과 도로 시설들이 무계획적으로 자리하고 있어 참으로 남루한 인상을 받았다. 이곳은 달라이 라마께서 계신 성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 서글픈 생각이 번져 감을 어찌할 수 없다. 그들의 나라 앓은 슬픔이 자꾸만 내 가슴에 여울진다. 이 가여운 백성들을 거느린 달라이 라마 당신의 연민은 어떠하실까? 자비로운 어머님이신 관음의 화현은 당신 어깨에 지고 있는 티베트 백성의 고통에 소리 없이 눈물짓지는 않으실까?

계속 내리는 비가 마치 그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성지에 머무는 동안 내내 애잔한 마음을 펼칠 수 없었다.

셋째날 아침 호텔서 20여분 걸어서 방문한 남걀 사원, 그 큰 법당에 들어섰다. 사진 속의 미소짓는 달라이 라마는 법당의 분홍빛 오묘한 구성의 탱화를 배경으로 그대로 하나로 녹아든다. 어설프지만 오체투지를 드리려고 서 있는 구석 자리에서도 나는 그가 전하는 자애로운 메시지를 분명히 감지 할 수 있었다. 달라이라마는 사랑과 자비로 백성을 품어주며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경배 드리고 있었다. 그와 티베트 민족 사이에 단단히 매어진 신뢰와 사랑 그리고 존경의 끈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는 과연 자비의 화신이며 백성의 부모였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지식들이 가슴에 울려왔다. 그들은 나라 잃은 슬픔에 주저앉지 않고 인과 법칙의 슬기로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법 속의 저들의 모습이 진실로 아름다웠다.



티베트 수호의 신 내충 사원


남걀 사원 법당 앞에서 하염없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할머니 옆에서 나도 어설픈 오체투지를 흉내낸다. 그녀는 고맙게도 나에게 다 해져 가장자리만 남은 손걸레를 밀어준다.

이곳에 와서 직접 예배할 수 있음에 눈물이 날 것 같다.

망명 정부를 방문한 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달라이 라마가 다람살라로 망명할 때 함께 가지고 온 중요한 경전과 탕카 등 을 보관한 도서관은 관람할 수 가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부근에 위치한 내층 사원(Nechung Monastry)은 참으로 흥미로운 곳이었다. 내층 사원에는 ‘쿠텐’이라고 부르는 신탁 승려가 있는데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에 자신이 영매(미디움)가 되어 티베트 수호의 신(神) 내충의 지혜를 전해준다. 그는 사사로운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국가가 지정한 State Oracle이다. ‘쿤둔’ 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할 때 신탁에 든 쿠텐이 그려주는 지도에 의거하여 길을 따랐던 장명을 기억하실 것이다.

1950년대에 세워진 다람살라의 내충 사원은 물론 티베트에 있는 내충 사원을 본 따서 만든 것이며 이곳에는 쿠텐 승려의 가르침 아래 70명의 승려가 불교 철학, 심리학, 대승ㆍ소승 경전, 탄트라 경전, 불교 의식 무용, 불교 음악 등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내충 쿠텐이 영매로서 신탁을 하는 전통은 티베트 민속 종교인 ‘뵌포’교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더욱 재미난 것은 뵌포교의 사제(司祭)가 강신(降神)상태에서 헛소리를 하는 것, 무악, 제물, 의식을 집전 할 때 입는 무복은 우리 나라의 무당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과 흡사하다고 한다. 티베트 문화, 특히 민속을 보면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군 신화의 고향인 신산(神山)과 불교, 힌두교, 뵌포교의 신산(神山)이 모두 수미산이기 때문이다. 이는 원시 샤머니즘이 중앙 아시아 알타이 문화전반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고 우리 민족과 티베트 민족과 사이에 관련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중국을 미워하지 말고 이해하라”


여행 넷째 날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을 울린 방문은 티베트 어린이 마을(Tibetan Children's Village)를 찾은 일이다. TCV는 우리가 묶었던 호텔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부모와 헤어져 이곳에서 생활하는 네 다섯 살 어린 꼬마에서부터 중학교 연령대의 소년, 소녀들은 모두 푸른 교복에 회색 빛 조끼를 입고 있었다. 나는 조금은 수줍은 듯 우리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아 주었다. 가냘픈 몸매로 꼬옥 안기는 아이들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티베트 민족의 건강한 미래를 보았으며 티베트의 현실을 세계에 알릴 힘찬 동량을 보았다. 달라이 라마의 누이가 교장으로 있는 TCV는 비교적 정갈하고 견실하게 운영되는 것 같았다.

지금도 내 가슴에는 나지막하지만 힘있는 안내자의 말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중국을 미워히지 않고 이해하도록 가르칩니다. 미움은 또 다른 고통을 낳기 때문이죠...”

여행 6일, 7일 째 우리는 여행의 한가로움을 만끽했었다. 야생의 연꽃이 제멋대로 흐드러져 피어 있던 휴양도시 스리나가르의 달(Dal) 호수!

그때 호수의 아름다움은 여행의 백미로 기억된다. 나는 호수에 비치는 달과 하늘에 뜬 보름달과 온통 하나되어 적막한 호수에 배 띄워 두둥실 노 저었다. 배에서 바라보는 우리들의 선상 호텔은 꿈속에 보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나른한 휴식으로 이틀을 만끽한 우리는 이제 여행 8일, 9일째, 라다크 지방으로 가기 위해 장장 이틀을 달려가야 한단다. 아마도 가장 힘들었지만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추억의 여정이 되었을 거다.

누우런 황통 빛깔의 히말라야 산 구비 구비 420여 킬로미터를 가슴을 조이는 두려움으로 무더운 흙먼지와 싸우며 달려 대면 언제 낙석이 떨어질까 긴장이 되어 잠도 오지 않는데 해발 4,000미터에 가까이 오를수록 고산증 증세를 보이는 15살 짜리 사내 조카아이는 일회용 산소를 세 통 째 마시더니 아예 운전석 뒤에 일자로 누워버렸다. 자라는 아이들은 어른 보다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데... 조카는 열이 올라 입술이 바짝 마르고 온몸이 뜨겁다. 어린 나이에 좋은 체험이 될 거라 여기며 동갑나기 딸도 함께 데려왔는데 다행히 딸은 아직 괜찮다. 험한 곳에 손주를 다 데려간다고 걱정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맘에 걸린다. 모두들 지친 데다 조카 걱정으로 마음들이 편하지 않을텐데... 에구, 알고서 이 고생을 또 하러 올까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다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무사해야 할텐데... 슬며시 염려도 되었다. 바로 그 때 혜초 스님께서도 불법을 구하러 이 길을 걸어서 지나 가셨을 테지...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부끄러움에 혼자 얼굴이 벌개졌다.



천년 불사 현장서 만난 ‘마하무드라의 노래’


“나라유르 곰파를 참배하십니다. 내리십시오”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내렸다. 아찔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또 치솟은 산을 향해 꼬박 이틀째 달려 오르고 내리길 서너 번... ‘나라유르 곰파’라니! 도대체 이런 곳에 뭐가 있단 말인가. 아휴, 저어기 절까지 이 땡볕에 어떻게 걸어갈꼬? 칭얼대는 딸을 부축한다. 나도 그런데 너는 오죽하겠니..

그런데 그곳은 내가 만난 황량한 산 속의 오아시스였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하여 최소한의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신선한 감동을 지금 또 떠올려 낸다. ‘나라유르’라는 이름은 그 황량한 산 속에 무엇이 있겠냐고 얕잡아 본 나의 안이한 생각을 강타했다. 작지만 지금도 불사를 하고 있는 1,000년 불법의 현장이었다.

곰파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는 법당에 들어가서도 계속 어리둥절하였다. 티베트 최고의 고승으로 일걸어지는 카규파 법맥의 마루빠가 수행하던 동굴이 법당 옆에 어둠으로 통해 있었고 그의 스승 틸로빠, 제자였던 나로빠, 나로빠의 제자 밀라레빠의 불상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었다. 20년 전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읽었던 감동을 가슴에 묻고 계셨던 김동민 교수님의 감회 어린 표정이 퍽 인상적이었다.

‘마하무드라의 노래’는 깨달음을 완성한 틸로빠가 자신의 깊은 체험과 절실한 구도 여정을 통해 깨우친 지혜를 나로빠의 영혼 속에 불러 준 사랑의 노래이다. 천년 전 인도에서 인간 정신의 최 정점에 도달했던 틸로빠의 영혼의 노래 ‘마하 무드라’는 그의 제자 나로빠를 거쳐 현대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나는 요즘 이 영혼의 책을 읽으며 그때의 감회를 되새긴다.

야외 도량엔 찬란한 붉은 빛 단청 건물이 오히려 무채색 자연을 배경으로 더 더욱 찬란하다. 푸른 대자연 속의 우리네 단청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아하! 그래서 각 민족의 고유한 멋이 담긴 전통의 문화는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하지... 어! 도량 밖으로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경치가 예사롭지 않은데... 그래서 마루빠 스님이 이곳에 토굴을 지으셨나 보다.. 토굴에서 혜안으로 바라보고 달의 표면처럼 보이는 저곳을 ‘달’(Moon)이라 이름 붙이셨을까? 달이란 이름을 두고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틱세 곰파의 아름다운 미륵불


이틀 내내 산 속을 달리느라 어지간히 지쳤던 우리는 그곳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청량감을 느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잡은 한국의 절만 생각하다가 생각의 틀이 한껏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황량하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일구고 닦아왔을 것이라 추측해 보았다. 나 같은 근기(根機)로 이런 척박한 땅에서 수행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어깨가 슬며시 움추려든다.

나라유르를 떠나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풀 한 포기 보기 힘든 히말라야 계곡을 다시 이력이 날 만큼 버스는 달린다. 우리의 마지막 방문지가 될 라다크 지방의 레를 향하여.

저 멀리 떨어지는 붉은 해가 영국의 화가 터너가 그린 노을을 연상시킨다.

여행 9일째, 밤에 찾아들은 도시 레의 호텔에서 식욕이 없다는 조카를 달래어 스프와 흰죽을 먹였더니 밤새 토했다고 한다. 조카가 걱정이 되어서 아침 일찍 의사의 왕진을 청했다. 오전엔 동서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함께 있다가 아이는 하루 종일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대로 오후에 우리만 틱세 곰파에 있는 일행과 합류했다. 틱세 곰파는 먼 밖에에서 보기엔 황량했지만 쏭카파의 예언대로 15세기에 창건된 경관이 빠어난 절이었다. 법당에 모셔진 미륵불은 정말 아름답고 화려했다. 특히 눈매의 선과 입술의 윤곽선이 조형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처리되어 빼어난 완성미를 갖추고 있는데, 입체로 조성된 채색 부처가 전무한 우리의 눈에 새로운 불교 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섬세하고 화려한 가운데서도 기품이 배어난다.

오늘은 보름- 티베트 사찰에 뿌자(법회)가 있는 날이란다. 도량의 한 켠에는 머리를 길게 따고 검정색 민속의상을 입은 열댓 명의 할머니들이 뿌자를 끝내고 나와 점심 공양을 하고 있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주름으로 깊게 패였지만 어느 누구하나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저 곱고 자비로운 미소는 어디서 올까?



서양인들에게는 충격인 그들의 삶


‘당신은 친절한 마음과 함께 합니까?’ 라는 티베트 인사말처럼 그들은 평생 남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며 남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불교는 복을 비는 수단이 아니며 나보다 남을 위하여  이타(利他)의 생활이 깊숙이 배어있다. 그 많은 리포체들도 또 달라이 라마도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하여 성불을 미루고 다시 오시는 관세음보살이라 하지 않던가?

티베트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이 종교 생활 그 자체였다. 서양인들은 이런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꽃보다 아름다운 인간의 마음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으리라. 서양인들에게 죽음이란 입에 올리기도 싫도록 끔찍한 주제라는데 생을 마친 수행자가 옷을 갈아입듯이 죽음을 맞이하고 또 맞이하고 또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환생한다는 윤회의 가르침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겠는가? 기라성 같은 감독들이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려고 온 정성을 쏟아 부었음이 이해가 갈 것이다. 또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호지 여사는 티베트 인들의 삶의 방식에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미래가 있다하지 않았던가?

평생 모은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절에다 희사하기 때문에 재물을 모으는데 집착하지 않는다는 티베트 사람들. 마음에 갈등이 생기거나 집안에 다춤이 생기면 곧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실천하는 덕분에 우울증이나 치매 같은 정신 질환도 없고 사회 문제도 없다는 나라 티베트. 과다한 상업 자본주의의 부조리로 빚어진 갖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패러다임으로서 티베트인의 불교적 삶이 서양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활불이 계신 불국토가 침략의 마수 아래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질문이야말로 불자 모두에게는 큰 화두일 것이다. 그러나 대원사 현장 스님의 명쾌한 한 말씀은 비온 뒤 선명하게 드러나는 무지개처럼 나의 마음을 밝혀 준다.

“...로마의 박해는 기독교가 세계화하는 초석이 되었듯이 중공의 침략은 티베트 불교의 세계화를 가져 올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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