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 선文化
PRESS RELEASE/Magazine 2007/03/11 20:45
 


무기교의 자연스러운 선불교사상, 패션에 녹아들다

                                                                                                                     김혜정(본지 기자)


선(禪) 바람이 불고 있다.

인테리어, 광고, 화장, 우리가 눈만 뜨면 걸치게 되는 옷 등 의식주와 생활 전반에 걸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왜 선일까.

패션이란 단지 의류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문화적인 모든 요소에서 통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패션이라면 복식을 중심으로 한 유행현상 및 유행하고 있는 복식 그 자체를 말하지만 사회현상의 하나로 일정한 사회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자극에 대하여 일으키는 반응으로 사회적 동조의 한 형태라 볼 수 있다.

‘패션은 한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 이라는 말도 그 만큼 사회현상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숨이 턱턱 막히는 현대인의 삶에 선패션의 유행은 자연스러움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선패션은 복잡함, 화려함, 과장되고  시끄러운 것을 표방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움과 순수함, 비어있음의 정신세계를 향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가 투영된 이 시대의 거울인 셈이다.

선사상을 화장품에 이용하여 용기도 다기잔처럼 만들고 피부학적 효능의 강조와 함께 몸과 마음의 안정을 추구, 은은하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있으며 절제된 선방 이미지의 인테리어, 승가풍의 가람을 상기시키는 정갈한 무채색 위주의 침구류, 달마상이나 자비로운 부처님상을 등에 그려넣은 티셔츠, 스님의 발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식기들 등 선불교사상을 폭넓게 반영하는 선패션의 유형을 보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패션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오늘날 선불교는 원산지 인도의 경우 최근에 일어서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명맥이 희미하며 중국불교는 문화혁명 이후 많이 쇠퇴해졌고 일본불교 또한 상업화된 것에 비해, 속세와 떨어진 산사로 이어져 철저하고 혹독한 수행문화가 생생히 살아있는 한국선불교가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패션이란 외부로부터의 욕구를 벗어나 나자신의 내부로 철저하게 파고드는 다름아닌 우리의 선불교의 정신이 내재하고 자연스럽고 소박한 우리 민족의 정서 등이 공존하는 형식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오랜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된 불국사 다보탑 기단과 같은 한국 건축물들 보면 규모에 있어 비록 작다 하더라도 순박한 큰 맛이 있고 그 표현에 있어 번화하며, 복잡하고 강인한 면이 비교적 적으며, 담백하고 유연하여서 어딘지 모르게 현세에 집착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즉 선패션의 매력은 그러한 자연에 순응하는 무기교에서 오는 것이고, 인위적인 기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절제된 색상과 소재를 특징으로 하지만 정형화되거나 깎아지른 듯한 차가움이 아닌 따뜻함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선패션의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선패션이 자연주의 흐름과 함께 유입되어 선의 정신세계를 통해 대안을 찾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큰 반항을 일으키고 있고 선불교의 대중화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반면 선에 대한 깊은 통찰없이 외관상으로만 그럴듯하게 포장해 선을 지나치게 상품화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전망한다.



복식문화에 선불교 사상을 담은 이기향


선불교사상을 복식문화에 담아 현대화, 생활화를 표방, 이를 예술적 승화로까지 이끌어내는 과감한 시도를 거듭, 세계시장에 폭넓게 기여하고자하는 이기향(한성대 의류직물학과) 교수를 찾았다.


- 선과 불교의 정신을 옷에 담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며 흙에 색이 비어있는 것에서 오는 허전함처럼 끊임없이 나를 갈증나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다 의상학을 접하게 되었는데 유학시절 여지껏 믿어왔던 나의 정체에 대한 혼란이 왔다. 내가 이게 뭔가. 나의 정신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철저히 깨져서 귀국, 우연히 시어머님을 따라 절에 다니면서부터 불교를 접하고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옷은 우리가 눈만 뜨면 걸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서양옷을 입고 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선불교사상을 담은 옷을 만들고 세계 속에 잔뜩 쏟아내고 뽐내고 싶다. 그것이 곧 불교문화 발전을 위한 일이 아닐까.

불교를 처음 접하고 정돈되지 않은 듯한 산만함과 잡다함으로 인상을 찌뿌렸었다. 나중에 알게 됐다. 불교가 무속이고 토착신앙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구나. 부처님의 커다란 포용이었다. 이렇게 좋은 것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무섭게 빠져들었다.

선불교의 정신을 담은 옷을 입는 이가 그 옷만큼의 그릇이 되고 깨칠 수 있다면... 부처님의 미소를 그려 넣은 옷을 입고 감히 남을 속이고 나쁜 생각을 하겠는가.

불국 정토가 따로 없다. 저마다의 품 안에 부처님의 진리 안고 다니는 세계가 아닐까.


- 선생님이 추구하시는 선패션의 특징은?


일체의 장식을 철저히 없애고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이 미니멀리즘과 같지만, 단순하고 냉철하고 차가운 느낌의 디자인이 미니멀리즘이라면 선은 그와는 다르게 자연스럽고 아늑하고 따뜻하다.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녹아든 우리 전통 조형물들을 보면 어느 하나 똑같은 형태가 없이 제각기 다름의 미학으로 완벽한 하나로의 조화를 이뤄낸다.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갖는 깊이는 어떠한 인공적이고 과학적인 치밀함보다 뛰어난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지닌다. 자연스러움에서 배어나오는 감탄과 환희가 절절하게 가슴을 치고 눈시울을 적신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게 바로 선이다.

내가 안고 있는 화두는 하나다. 부처님의 자비와 진리를 중생들과 함께 공유하고 회향시키는 것.


- 선불교의 공의 개념과 불화에서 느껴지는 색채의 꽉 차있음이 다르다고 보지 않는가?


고려불화를 보면 화려하고 많은 색채를 가지면서 기품이 있고 우아하며 드러내지 않는다. 처음엔 꽉찬 불화를 보고 색깔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비어있고 걸림이 없기에 꽉 차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과를 손에 쥐고 있다 먹여버리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것은 다만 실체가 사라지는 것 일 뿐이다. 실체없이 순환하는 것, 백합 한 송이에 한 우주가 들어있듯 비어있음과 꽉 차 있음은 결국 같은 것이다.


- 젠문화는 일본에서부터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젠문화와 우리의 선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스즈끼 선사가 60년대 불교에서 선을 독립시켜 이를 생활화, 상품화시켜 서양에 젠문화를 퍼뜨렸고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합쳐져 다시 동양으로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용어개념의 정리일 뿐이다. 패션계를 주도하는 층에서 트랜드를 분석,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에서 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이어 내려온 선불교의 전통이 있다. 한자문화가 중국에서 들어와 한국, 일본에 전해졌는데 지금은 한국에 가장 정확한 한자가 내려오고 있듯 선불교, 선패션도 마찬가지다. 선패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스님들이 입고 있는 승복이 바로 선패션이 아닌가.


- 지금까지 작업해온 것들을 소개한다면?

의상을 하나의 인상깊은 그림이나 장면을 보듯 입체적이고 살아있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강렬하게 표현해 왔다.

그래서 퍼포먼스와 무용, 연극적인 요소 등이 다채롭게 활용되는 것은 기본이고 영상, 음악, 춤 등이 어우러진 종합적 의상 발표회를 가져왔다. 전통의 기반 위에 선불교문화를 응용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춤과 의상, 영상이 만나는 예술적 시도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99년에는 영산회상의 극적인 이미지를 승화시킨 작품전 ‘영취산의 환희’를 통해 불교전통춤인 나비춤 의상을 조형성이 강한 미술의상으로 재조명한 작품과 영산회상에 등장하는 수월관음, 비천상, 문수보살, 아귀 등의 인물들을 직물 디자인한 작품 총 20점이 출품됐다.

‘영취산의 환희’는 불교의식인 영산제의 종합 예술적 요소를 재구성하여 춤과 움직임 그리고 소리와 설치미술이 엮어지며 동서양이 만나는 자연스런 퓨전의 세계를 만들어가고자 하였으면 배경음악도 역시 불교음악인 범패와 서양의 성가와 함께 경건하고 신비롭게 곁들여진다. 또한 2000년에 올린 ‘비늘’이란 작품은 세 사람의 불자 예술가가 의기투합한 새로운 형태의 무용작품이다. 업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본래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불성(佛性)을 되찾아 해탈한다는 주제를 총 3장으로 구성했다.


- 선패션의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물질문명이 발달되고 모든 것이 물질화되어 갈수록 인간은 정신세계를 갈구한다. 그러니 불교와 선이 더욱 부각될 수 밖에.

선패션은 인간과 사물 그리고 공간이 헝클어지지 않고 하나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 현재 작업중에 있는 것은?


<화엄경>의 주내용인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위한 마음을 발심하는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만나는 구도의 행각과 마지막 보현보살을 만나 깨달음에 이르는 감동적인 순간 등을 소재로 구상중에 있다.

작가는 자꾸 변해야 한다. 틀에 박히지 않고 튕겨져 나오는 것, 그게 작가가 가야 할 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시도하고 담아내고 싶다. 안하면 미칠 것같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때론 겁 없이 황당하게.


=사진설명: 1.이기향 교수의 선패션 <더없는 행복>. 영산회상을 극적 이미지로 승화시킨 ‘영취산의 환희’를 통해 선불교의 이미지를 의상에 자연스럽게 녹였다.

2. 이기향 교수의 초기 작품 <피안을 향하여>.

  편암함과 기쁨을 주는 보살의 이미지를 표현.

3. 전통 연꽃 문양을 소재로 한 드레스.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세련미가 흐른다.

4. 연꽃을 소개로 한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의상이 다채로운 용도로 활용된다.

5. 웨딩문화에 선불교를 승화시킨 현대적 감각의 혼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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