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끌레르 2008. 3
PRESS RELEASE/Magazine 2008/05/08 23:34
 




空의 미술

흐르는 공기처럼 현상으로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의 본질, 공(空)의 깨달음이다.
비움을 통한 행복을 그리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캔버스는 몸이다.


  뉴질랜드에서 매년 열리는 와우(WOW)페스티벌은 전문 아티스트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참여하는 대중적인 페스티벌이다. 몇 해 전, 몸에 걸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아트워크가 출품돼 일반에게 공개하는 이 페스티벌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 문화적 충격이라고 할 만큼 신선한 구석이 있었다. 패션쇼의 한 장면처럼 모델들이 몸에 걸친 채 런웨이에서 보여주는 작품들 중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예술성이 돋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지극히 아마추어리즘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었다.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한가한 나라의 소박한 사람들이 벌이는 학예회쯤으로 폄하하고 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 국민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열광적이었던 이 페스티벌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예술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됐다. 팝아트란 대중의 취향과 수준을 얕잡아본 장난 같은 미술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폭넓게 향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것이 아닐까 하는.

  'Moving Image展'이라는 서브타이틀을 단 '我! 나, 훔쳐보기'에서도 캔버스는 몸이다. 전시는 의상과 보디 페인팅을 활용한 퍼포먼스와 비디오 상영으로 이루어진다. 조소와 패션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의상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번 전시의 아트 디렉터 이기향은, 옷을 모티프로 한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는 작가다. 그녀에게 옷이란,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구현하는 원동력으로서의 몸을 감싼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기향의 작업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불교적 세계관이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꿈꾸지만, 본능과 욕망을 좇을수록 행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다. 행복보다 쉬운 것은 고통이다. 잠시 실체가 없는 현상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질 뿐인 존재의 본질을 잊는 우리의 습성이 고통을 부른다. 작가는 여기에 '공(空)'의 개념을 끌어들인다. 집착을 버리고 존재의 본질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다분히 관념적인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인체 위에 탱화를 그린다. 카메라는 벌거벗은 몸 위에 그려진 불교적 문양들에 다가갔다 물러서기를 반복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실재하지만 실체는 아닌 욕망의 본질을 훔쳐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제안한다.

  전시 공간은 두 개로 나뉜다. 제1전시실인 '생각의 방'은 지혜를 키우는 사색의 공간이며, 제2 전시실인 '놀이의 방'은 생각의 방에서 학습한 주제인 '空'의 지혜를 현장 학습하는 참여의 공간이다. 제1 전시실에서는 Moving Image展 '我! 나, 훔쳐보기'의 기획 의도, 스케치, 의상 등의 자료 전시와 8분 내외 길이의 영상 이미지 3편, 작가 노트 영상1 편을 상영한다. 이번 전시는 3월 7일부터 3월 18일까지 광화문 갤러리에서 열리며, 입장료 수입 전액은 미혼모 시설에 기부할 예정이다. (문의 02-399-1111).

에디터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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