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506. 우바이예찬
PRESS RELEASE/Magazine 2008/05/30 19:19
 







첨단 디자인에 넘나드는 불보살의 세계


  산자락에 자리잡은 4월의 한성대 캠퍼스는 봄꽃으로 화사하다. 풋풋한 대학생들과 신록까지 어우러져 화엄동산이 따로 없다. 이런 자연을 그림이든 글이든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면, 그것도 욕심일까? 그렇다면 오늘 만날 이기향 교수(53세, 한성대 예술대학 의생활학부)는 참으로 욕심이 끝없는 사람이다.
  '한국 예술계의 밝은 빛'. 한 외국인 기자가 이 교수의 작품을 보고 내린 평이다. 동양의 정신, 불교의 세계를 추구하는 그의 디자인에서 서양인인 기자가 한국 예술의 빛을 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교수는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패션잡지에서도 주목하는 능력있는 한국 예술가이며, 자랑스런 불자다.

경전이 작품 소재, 마음에 그림이 그려져

  이 교수는 1995년부터 개인전을 비롯해서 국내외 의상 초대전, 패션쇼, 미술의상쇼, 무대미술, 연출 등 120여 차례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때마다 그가 소통하고자 한 건 '불교문화를 이 시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멈추지 않는 바람[願]이다.
  그가 처음 자신의 전공인 의상 디자인에 불교를 접목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90년대 초, 석사논문을 준비할 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려던 중에, 모든 예술이 '행복'을 위한 한 방편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데는 부처님 가르침만한 것이 없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처음엔 외로웠다. 95년 광주비엔날레 출품 때도 겪었지만, 주변의 반응이 싸늘했따. 촌스러운 불교를 최첨단의 패션에 접목시키겠다니….
" 처음엔 노골적으로 불교 색채를 드러냈어요. 스님들조차 조금 거북스러워 하셨죠. 연꽃이나 불보살이 그려진 옷을 입으면 불교를 가깝게 느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7년 반에 걸친 외국 생활도 결심에 한몫 했다. 한국인으로서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이 기억났다. 서양 예술을 따라하느라 정작 우리 것의 귀함을 모르고 있다는 것에 자괴감도 들었다. 이때 불모(佛母) 박정자 선생의 '해도 된다'는 격려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그때부터 경전을 읽다보면 마음에 그림이 그려졌다. 경전을 소재로 한 디자인이 그의 손에서 '마음으로 짓는 옷'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바디페인팅과 디지털 영상이 어우러진 이색 전시 시도

  그가 옷에 표현하고 싶은 것은 세련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부처와 보살의 이미지다. 그에게 옷은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법의 세계를 위해 육체가 필요하듯, 정신을 담을 육체에 옷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995년 아홉 달 걸려 만든 옷 아홉벌을 들고 국내 첫 개인전 <피안을 향하여>를 열었다. 시어머니를 통해 처음 불교를 알았을 때의 감동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았다.
  성지순례차 올랐던 인도 영취산에서의 환희심을 표현한 <영취산의 환희>(1999),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 동자를 모델로 한 <華의 구도 여행>(2003), 그리고 얼마 전 금강경의 '색'과 '공'을 주제로 한 <我 ! 나, 훔쳐보기>까지, 이른바 촌스러운 이미지의 불교와 가장 세련된 패션(의상)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의 전시는 형식에서도 이색적이다. 바디페인팅과 디지털 영상이 어우러진 '움직이는 전시'로서, 불교를 주제로 하면서도 가장 파격적인 매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의상 전시의 새로운 시도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삶은 '최적의 것' 찾아가기, '공'의 지혜 필요

  "남편과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시어머니께 끌려가다시피 가서 불교 강의를 들었어요. 충격이었죠. <기초교리강좌>였던 것 같은데, 그간 고민하고 갈등하던 모든 문제의 해답이 거기 들어있었어요. 그걸 모르고 고통스러워 한 시간들이 너무 억울했어요. 졸지 않고 강의를 들은 건 아마 처음일 겁니다."
  아예 남편까지 불교 공부에 끌어들였다. 남편 유필화 교수(성균관대)는 동양 학자로는 드물게 독일에서 《부처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라는 서적을 출간한 경영학 박사다.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쓴 이 경영서는 서양 경영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부부는 나란히 교수불자연합회와 '우리는 선우' 등에서 활동하면서 몽골, 티베트 등을 돕는 일에도 동참해 왔다.
  "힘들 때 경전을 펴면 '욕심 때문'이라는 말씀이 들리는 듯해요. 먼저 양보하면 다 풀리는 것을…. 삶은 최적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 空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교수는 소수자들에게 관심이 많다. 미국 유학 시절 한국인으로서 자신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성애자, 유대인 불자 등의 소수자 친구들도 많다.
  그는 서울대에서 조소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판화와 의상학을 공부한 뒤 한국에 돌아와 이대 대학원에서 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의상 공부를 한 뒤 연구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가 무대 기법을 공부했다.
  현재 연세대학원에서 패션디자인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건 복이지만, 한편 수행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깨질 만큼 깨지고 나서 단단해졌다는 이 교수. 부처님의 세계를 의상에 꽃피워내는 그의 예술세계가 한 번 더 도약할 날을 기대한다.


 
 
1 2 3 4 5 6 7 8 9 .. 140
 
Copyrightⓒ 2007 Art to Wear- Lee, Kihya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