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가 넘치는 윤필암
DIALOGUE/My Life, My Works 2007/01/26 17:39
 
자비가 넘치는 윤필암                                        

월봉 스님을 뵙고난 저녁 무렵 다시 한 시간 남짓 한적한 길을 따라 윤필암으로 향했다.  봉암사의 맑은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늑한 산길에 들어서니 자연의 운치까지 더해진 행복감이 공연한 서운함으로 바뀌어 버린다. 좋으면 그 뿐일텐데 시간에 집착하는 중생심을 보며 관음보살을 되네였다.

윤필암은  한국 최초의 3대 비구니 선방의 하나다.  수덕사 견성암에 이어 비구니 선방의 필요성을 절감하신 만공스님께서 이곳에 터를 잡으셨다 한다.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의 마지막 날, 우란분재 불공을 드리러 들어선 윤필암은 해제 전날이기도 해서 참배객들로 꽤 붐비었다.  다음날 새벽, 도량석 목탁 소리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사불전(四佛殿)으로 향했다.  저 멀리 창 밖 四面佛은 새벽의 칠흙 같은 어둠 속에 보이지 않으니 다만 촛불의 환영이 비친 유리창을 향해 절할 뿐이다.  꾸벅꾸벅 절을 하다 머리를 들어 별을 보니 사불암 위의 선명하게 밝은 별 하나가 석가를 깨달음으로 이끈 빛이라고 스님께서 일러 주신다.  과연 먹물같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은 저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훤하게 밝아오는 회푸른 하늘에 별은 더 높이 이동하여 부드럽게 빛을 잃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는 광명의 낮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아무런 상도 냄이 없는 우주의
움직임은 질서의 여여함을 깨닫게 한다.  평소에 열심히 절을 안한 탓으로 드디어  다리가 후둘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긴 하루가 될 터인데, 영가께 올리는 우란분절 불공을 위해서 그만 내려가야겠다.
사시가 되니 법당뿐만 아니라 쪽마루까지 신도들이 그득하다.  마루 한켠에 겨우 절할 만큼의 공간을 차지하고 스님의 염불 소리에 귀 기울였다.  정성을 모아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이곳에 나투신 그리운 부모 영가가 어깨를 감싸주시는 듯 포근한 기운에 젖어든다.  재를 올리고 나서 영가의 옷을 태우는 붉은 장작불을 지켜보았다.  삭아가는 붉은 불빛은 이제 푸른 연기로 화하여 공중에 산화하는 넋이 되는구나.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일주문으로 향하는 수행자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100일 참선을 회향하고 떠날 차비를 하는 스님들의 맑은 미소에서 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과연 수행을 통한 내면의 향기는 도회지에서 온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주지 스님의 배려로 선방 안 뜰을 산책하였다. 이곳을 보지 않으면 윤필암을 다녀갔다는 말을 하지 못하리라.  가파른 절벽의 산자락을 이용하여 꾸미지 않은 듯 손때와 정성이 담겨진 아름다운 내당이 자리 잡고 있다.  바위틈의 야생화 또한 절경이다.  아름다운 공간에서 다려주시는 차를 마시며 은은한 차의 향에 취하니 그냥 그대로 극락이었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다.    

윤필암에서의 이틀은 가을 학기 시작으로 분주해졌던 마음을 감사와 평화로 채워 주었다.  조상님들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주고, 수행의 맑은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는 곳  -  그야말로 자비로 넘치는 윤필암이었다.

수행자들이 지혜로 이끌어가는 윤필암, 언제나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200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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